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말복과 함께 태풍 카눈이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주말이 되자 해가 쨍쨍하다. 한 주 동안 매체를 뜨겁게 달궜던 잼버리 대회 관련 이슈들은 주말이 되자 '성공적이었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대회를 잘 치렀다'는 내용의 기사들로 포털창이 변해간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이슈는 이슈로 덮이고, 정치권의 책임 공방은 또 하나의 오락거리처럼 받아들여질 게 뻔하다. 잼버리 대회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집단항명수괴죄로 기소된 사건 역시 폭발력이 대단한 이슈였다. <D.P.> 시즌2가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실에서 비슷한 사건이 터지니 공교롭다. 역시 K콘텐츠의 힘은 현실과 픽션의 간극이 불분명한 것에 있나 보다. 우리는 그저 영화와 드라마를 영화와 드라마로 소비할 수 없다.
다들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이 두 사건 때문에 한 주 동안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체의 보도 내용, 사람들의 반응이 '책임자가 누구인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잼버리 대회 파행의 경우 보통 이런 일이 터지면 책임지는 사람이 먼저 나와야 정상이다. 일단 정부 책임이다 선언한 뒤 국민과 참가국에 사과를 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수순이다. 정치적, 법적 책임은 나중에 가릴 일이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 탓이다, 야당은 현 정부가 무능해서 그렇다, 여당은 전정권 탓이다라고 공격한다. 온 나라가 책임자는 누구인가를 두고 전쟁을 벌이는 것 같다. 채수근 상병 건은 책임지는 자가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늘자 데일리안에서 '전북도,부안군 떨고 있니?'...국힘 "잼버리 담당자 수사해야"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당연히 수사는 해야지. 그런데 이런 일의 경우 담당자들이 문제의 근원일 가능성은 낮다.
책임 소개를 가리기 전에 본업을 잘했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근데 에너지를 온통 책임을 안 지려는 데만 쓰고 있는 듯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권력만 누리고 담당자나 부하, 국민들이 연대 책임을 지는 형국이 계속되니 스트레스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요즈음 권력자나 기득권층이 사회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오가 없다. <밀수>에서 장도리가 악인인 이유는 해녀들에게 위험한 일로 내몰고 착취하기 때문이며, 권 상사가 전국구가 된 것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해녀 춘자를 지키려는 기사도를 간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Now & th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를 열심히 살다! (0) | 2023.10.03 |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 2023.09.24 |
23년 8월 15일, 광복절, 그리고 극장가의 참혹한 승부 혹은 즐거운 만찬 (0) | 2023.08.15 |
2023년 여름, 한국 영화의 위기 (0) | 2023.06.17 |
기록하는 사람 (0) | 2023.04.29 |
댓글